에세이, 혼자가 좋은데 혼자라서 싫다, 지은이:이혜린      /도서관에서 종이책 대여.
취향의 함정
취향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우린 믿는다. 지적 수준, 도덕성, 자라온 환경, 하다못해 전여친의 흔적까지 모두 취향에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나'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에 너무도 반갑다.
그 취향이 특이한 것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진다. 내 말을 진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 또 재치 넘치는 답안을 내놓을 수 있는 질문을 내게 던져주는 사람, 상상만 해도 불꽃이 튄다.
누군가의 취향을 탐구하는 자세에는 그 취향이 관계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줄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취향이 맞다고 성격이 맞는 건 아니었다. 취향이 잘 맞으면 취미를 함께 나눌 친구로 삼으면 되는 거지, 굳이 애인으로 격상시켰다가 천하의 웬수로 헤어질 필요는 없다.
그 아주 작은 취향 외에는 맞는 게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 어색한 순간. 상대 역시 나와 같은 지점에서 환상이 다 깨지고 해매고 있음을 눈치 채야 하는 서글픈 순간. 애초에 안 맞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금은 잘 맞는 게 낫지. 엄청 잘 맞을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보니 개뿔 별거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건 관계의 지속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다.
진짜 '잘 맞는다'는 건 취향과는 별 관계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 맞고, 안 맞고는 취향이 아닌 다른 데서 판가름 난다.
어차피,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다.

'독서 추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0) 2020.03.23
언어의 온도  (0) 2020.03.20
구의 증명  (0) 2020.03.20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0) 2020.03.20
404 이름을 찾을 수 없습니다.  (0) 2020.03.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