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에세이, 언어의 온도, 지은이:이기주       /종이책 구매.
그냥이라는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우린 사랑에 이끌리게 되면 황량한 사막에서 야자수라도 발견한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다가선다. 그 나무를,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뛰어간다. 그러나 둘만이 극적인 여행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서늘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내 발걸음은 '네'가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역시 사랑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관심은 폭력에 가깝고 상대에게 노력을 강요하는 것은 착취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눈물은 눈에만 있는 게 아닌 듯하다.
눈물은 기억에도 있고, 또 마음에도 있다.
그래, 어떤 사랑은 한 발짝 뒤에서 상대를 염려한다.
사랑은 종종 뒤에서 걷는다.
감정은 연출의 대상으로 될 수 없다. 시청률과 바꿀 수 없고 돈으로도 구매할 수 없다.
감정은 비매품이다.
사랑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진한 사랑일수록 그 그림자도 짙다는 것을.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사랑도 시간속에 스러진다는 것을. 설령 사랑이 변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사람이 변하고 만다는 것을.

감정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이모션의 어원은 라틴어 모베레다. '움직인다'는 뜻이다. 감정은 멈추어 있지 않고 자세와 자리를 바꿔 가며 매 순간 분주하게 움직인다.
239p~242p
고민을 해결하지는 못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묽게 희석할 때, 꿈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꿈과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지켜낼 때 우린 '어른'이 아닌 '나다운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울타리 저편에 남겨진 소중한 사람과 추억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에는 자칭 타칭 리더로 불리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고 권한과 책임 사이에서 심도 있게 방황하는 리더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뭐랄까. 다들 리드하겠다고 목소리만 높인다고 할까.
이름을 부르는 일은 숭고하다.
숭고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
그래서일까. 돌이켜보면 관심이 멈추던 순간,
상대를 향한 관찰도 멈췄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하릴없이 되뇐다.
살면서 내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나'인지 모른다고.
우린 늘,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306p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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